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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성: 한국학중앙연구원 학위수여식 축사
작성자 : 김주성(kim2417@gmail.com)  작성일 : 24.09.29   조회수 : 30
후기 학위수여식 축사
2024.08.22.
김주성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

오늘 박사학위와 석사학위를 받는 여러분의 학문적인 성취에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이사장으로서 무한히 기쁘며, 또한 뜨거운 축하를 드리는 바입니다. 더욱이 땅 설고 물 설고 말까지 선 낯선 나라에 와서 외롭게 땀 흘린 외국인 석·박사들에게 특별히 치하를 드립니다. 오늘의 학문적 성취는 여러분 삶에 새로운 계기가 될 것이며, 여러분의 가족과 사회, 나아가 여러분의 조국에 새로운 활력을 주리라 믿습니다.

여러분은 학문의 길에 들어와서 깨달음의 세계를 맛보았을 겁니다. 깨달음이란 존재에 대한 정확한 인식입니다. 깨달음을 얻으려면 자기 편견부터 부수고 존재의 빛에 다가서야 합니다. 자기 편견은 무지가 빚어내는 왜곡된 인식에 있습니다. 무지란 존재의 세계를 보지 못한 마음의 어두움입니다. 어두운 마음은 곧잘 존재의 인식을 왜곡합니다. 왜곡된 인식에서 벗어나려면 용기백배하여 존재의 빛에 마주서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도교수님의 도움으로 자기편견에서 벗어나, 늠름하게 존재의 빛과 마주했을 겁니다.

오늘 우리는 여러분의 성취를 축하하고, 앞길을 축복하고자 여기에 모였습니다. 깨달음은 좋은 것이지만, 얻기도 어렵고 펼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의 기쁨을 누리려면, 누구나 자기 편견을 벗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자기 편견을 버리는 것은 자기를 부정하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너무 고통스럽기에, 세상에는 편견의 옹벽 안에서 편안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여러분이 존재의 빛을 보았다면, 이제는 세상 사람들의 편견에 부딪쳐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어야할지도 모릅니다.

너무도 오싹한 국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는 피타고라스의 일화를 돌이켜봅시다. 그의 깨달음이 얼마나 위대하며, 그의 편견 역시 얼마나 무서운 것이었는지를 알려줄 겁니다. 그가 찾아낸 직각삼각형의 정리는 인류문명의 금자탑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직각삼각형 빗변의 제곱은 나마지 두 변 제곱의 합과 같다’는 것이며, 흔히 a²+b²=c²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에 너무도 자랑스러워 소 100마리를 잡아서 기념잔치를 벌렸다고 합니다. 2,500여 년 전에 소 100마리의 값이면, 지금에는 아마도 현대자동차의 최고급 모델인 제네시스의 100대 값 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대단하죠?)

그런데 위대한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자신의 신념을 뒷받침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만물은 모두 수’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모든 우주 현상은 숫자의 상호관계로 이루어졌고, ‘정수’ 또는 정수로 표시할 수 있는 비율의 수, 즉 ‘유리수’로 나타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믿음은 존재의 세계와 어긋났습니다.

그의 제자 히파수스가 존재의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길이가 1인 정사각형의 대각선 길이는 루트2입니다. 루트2는 잘 알다시피 정수도 아니고, 유리수도 아닙니다. 그것은 정수의 비율로 표시될 수 없는 무리수입니다. 2011년에 일본의 곤도 시게루라는 사람은 루트2의 값을 소수점 이하 1조 자리까지 계산하여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한 바가 있습니다. (시게루란 사람, 참 재미있는 사람이죠? 일본유학을 하신 원장님이 아는 분인가요?)

피타고라스의 잘못이 세상에 알려질까 봐 두려웠던 추종자는 살인을 저지릅니다. 배를 타고 가다가 히파수스를 바다에 빠뜨려 죽였던 것이죠. 무섭지 않습니까? 자기 학파의 편견을 지키기 위해서,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으니까요. 세상의 편견은 이처럼 잔인한 것이기도 합니다.

편견을 벗어나기가 얼마나 어렵고, 세상의 편견과 싸우기가 또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자기편견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젊은 날의 잘못을 깨닫고 존재의 빛을 보았으면서도, 젊은 날의 삶이 무의미해질까봐 두려워 눈을 감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기 편견의 어두운 옹벽 안에서 웅크리고 살아가는 것이 깨달음의 기쁨보다 더 달콤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이런 사람들 가운데에는 젊은 날에 깨달음을 날카롭게 추구했던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의 깨달음이 전부가 아니며, 내일은 내일의 깨달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존재의 빛은 언제나 우리 앞에 있습니다. 깨달음은 영속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오늘 한중연을 떠나면서 세상의 무서운 편견에 부딪치게 될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깨달음이 마냥 환영받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깨달음을 세상에 펼치려면 실천적인 삶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한중연에서 깊이 삶을 연구했고, 삶의 지혜를 넉넉히 닦았습니다. 너그러운 인품과 단호한 결단력, 설득하는 능력과 승복하는 아량을 모두 갖추었으리라 믿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편견과 세상의 편견을 모두 뛰어넘을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이 세상의 빛이 되리라 믿어마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앞날에 찬란한 영광이 함께 하기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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